그날 저녁 7시 즈음, 

매니저 약사님이 무슨일 있었냐고 물어봤다. 

 

원래 매니저 약사님께 매니저에 대해서 한번도 불평불만을 하지 않았던 내가 입을 열었다. 

 

'어제 (약만들어야할거) 80이나 있었어요'

라고 하니

 

약사님이 이마를 짚으며 'oh my god' 이라고 하셨다. 

 

어제 11:30분에 왔을때 

저라면 약 미리 만들어진걸 정리했을텐데

발주먼저 정리하고있었고요,

12시즈음 되니까 손님들이 자기 약 달라고 여기까지 발걸음 했는데,

솔직히 어제따라 너무 일 하기 싫어서

3시에 다시 오라고했어요. 

 

제가 대신 약 정리할수도 있었는데

진짜 어제만큼은, 너무 하기 싫었어요. 

 

근데요, 진짜 짜증났던거는요,

마음 한쪽구석은 제가 하고 해치우는게 나은걸 아는데도

그냥 그걸 지켜보고싶은 상황이 짜증났어요. 

그냥제가 하고 해치워버리고싶었는데, 

어제만큼은 그냥 손님들께 욕먹더라도 안하고싶었어요. 

 

라고 말하니

'Good!' 이라고 하셨다. 

 

약사님도 다 안다고 했다. 

솔직히 내가 약국에서 뛰어다니면서 일하는거보고

그렇게까지 된 상황이 너무 싫었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한테 처방전 입력도, 전화도 받지 말라고 하셨던거였고

매니저가 일을 못한다는거 정도야, 너무 잘 알고 있었다고 하셨다. 

 

그리고 제발 좀만 참아달라며, 다음주엔 뭐가 달라질거라며, 

본인을 믿고 참아달라고 하셨다. 

 

 

300XL 로 먹은지 한달이 조금 넘었다. 

 

곧 시작할 대학원때문에 시작한 집중력 치료인데

집중력엔 도움이 안되었고

욱하는 성격이나 과식/폭식에 도움이 좀 되었다. 

 

예전엔 손님이 무례하게 상대하면 나도 똑같이 대응했는데

도가 튼건가 그냥 상대하길 포기한건가

그냥 예예하고 넘긴다. 

(예전엔 컴플이 걸렸다면 지금은 컴플이 안걸리는정도)

예전엔 이성의 끊이 툭 하고 끊어져서 뭐라했다면

이젠 그 이성의 끈이 조금 더 단단해진듯 하다. 

 

그렇다고 굽신거리면서 손님들이 해달라는거 다 해주는거아니고

좋게 좋게 말하면서 손님이 해야할 몫으로 만든다. 

예를들어 보험회사 전화하기, 의사한테 전화하기등, 손님 본인들이 해야할일인데 본인이 해야하는지 모른다. 

우리 약국에 굳이 자기가 보험회사에 전화해주는 테크니션들도 있긴하지만

솔직히 내가 볼때마다 그 손님 하나때문에 다른 모든게 딜레이가 되니

나는 하지 않는다. 

 

그리고 본인이 가격이 마음에 안들고 본인 처방전이 급하면 본인이 전화해야한다고 생각하기에,

본인이 알아서 해야지 왜 그걸 내가 대신 해주고있나. 

아, 그렇다고 보험회사에서 해준말 고대로 옮겨 말하면 못믿겠다고 성화내면서 가는손님들도 있기때문에

시간낭비다. 

 

아직도 종종 과식을 하긴한다. 

그치만 안먹을땐 안먹는다. 

약이 아예 식욕을 뚝 떨어뜨리는건 아닌거같고

내 식욕을 내가 컨트롤 할 수 있게 "도와"주는거같다. 

 

약을 먹어도 내가 노력해야한다. 

 

다이어트 보조제가 운동하는 사람들에게 "부스터"로 작용하듯이,

약을 먹어도 내 식욕,식탐은 내가 조절해야하는거다.

 

약을먹고 결과적으로 3-4킬로를 감량할 수 있게 되었다. 

 

그치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집중력에는 어떠한 영향을 미치지못해서

부프로피온을 450으로 늘릴까 생각중이기도 하다.

모든 약국 사람들에게 나 그만둘거야 라고 말한뒤

약사님께 

'2주 notice 줄래요. 저 그만둘래요. 스케쥴 5/1일까지 짜여져있으니까

그때까지만 일하고 저 안나올래요' 라고 말했다.

 

여담이지만 나는 매니저 약사님들 참 무척이나 따르고 좋아했다.

내가 이렇게 멀티의 멀티 태스킹 하는것도

매니저 약사님이 디엠에게 너무 스트레스받는거 같아 내가 더 열심히 일했다. 

 

매니저 약사님이 내 대학원 추천서도 써주셨고

뉴욕대에 붙었을때도 매니저 약사님께 연락드렸고, 

그분도 일 끝나자마자 너무너무 축하한다고 전화까지 바로 하셨고,

내가 보스턴에 붙은날,

부모님보다 제일 먼저 알린분이 약사님이었다.

나는 그분을 정말 존경했고, 좋아했고, 잘 따랐다. 

 

그렇게까지 존경하는 분한테 내가

그만두고 싶다고 말하기까지 얼마나 용기를 냈겠는가.

 

하지만 그 말을 꺼냈을때의 약사님의 표정을 잊지 못한다.

너무나도 충격받으신 표정이었고

제발 제발, 그런 말 하지 마라며

나중에 이야기 해줄게 있으니 제발 제발 그 말은 하지말아달라 했다. 

 

그말을 들은순간

'아 나는 그냥 여기에 8월달까지 일해야 하는 사람이구나' 싶어

눈물이 나왔다. 

 

왈칵 쏟아지는 눈물을 참고

디티에 차가 안오는걸 확인한 후에

화장실 잠시 다녀오겠다는 말을 하고

눈물을 쏟아냈다. 

 

눈물의 이유는 모르겠다.

심적으로, 체력적으로 힘들었다. 

매니저만 보면 숨이 턱턱 막히고

집에서 나와서 약국으로 운전해가는 길조차 속이 메슥거렸다.

그의 무능력함때문에 내가 더 빨리 움직여야했고

속으로 수많은 말을 삼켰고

그 하나 때문에 직원들을 떠나보냈다. 

'저 그만둘래요. 5/1일까지만 일하고 그만둘래요'

라고 매니저 약사님께 말한 날이었다. 

 

그 전날 내가 11시 30 쉬프트에 들어갔을때

그 무엇도 되어있지 않았다. 

 

미리 만들어져 배달 온 약은 스캔도 안되어있고

뭐가 중요한지 당연히 모르는 매니저는

발주 온거부터 정리하고 있었다. 

 

내가 11:30분에 들어온 순간부터

자기 배달 온 약을 찾는 손님이 연속으로 왔는데,

그 모두에게 '3시에 오세요 아직 배달이 안왔어요' 라고 하며 돌려보냈다.

 

사실 내가 정리할 수도 있었다. 

내가 미리 만들어져온 약들,

내가 정리 할 수 도 있었다. 

아니, 원래 내가 했었다. 

 

근데 진짜 그날만큼은 매니저가 다 하게 냅뒀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냅뒀다. 

 

4번째 손님이 와서 내 약 어디있냐고 화내기 전까지. 

 

매니저는 내가 이래라 저래라 하는거 싫어하니까

약사님께 부탁해서 말좀 전달해달라고 했다. 

 

그러니 그제서야 발주온걸 냅두고

배달 온 약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오후 4시즈음,

매니저가 약만들때 

만들어야할 약이 80개를 넘어섰다. 

우리 가게는 그렇게 안바쁠 뿐더러

숫자가 저렇게 올라갈 리가 없는데,

 

자기가 느린걸 아는지 모르는지

꿋꿋하게 약만드는거 보고 

나만 마음이 초조해졌다. 

 

약사님이 로테이션 바꾸라는 말에도 불구하고

자기는 꿋꿋하게 약만들거라는 말도 해가면서

내가 그만둘 마지막 이유까지 만들어주었다. 

 

그렇지만 생각해보니

왜 내가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아야하나

 

일 잘하는 정직원 2명이 그만두면서까지 

쟤를 데리고있는건

매니저 약사님과 가게 매니저인데 싶어

그 모든 책임감을 매니저 직급을 단 사람들에게 넘기고싶었다. 

 

안그래도 그만둬야지 그만둬야지

쟤때문에 내가 명이 짧아진다

쥐꼬리만한 월급에 이렇게 큰 똥덩어리와 일할 필요가 없다

라고 결론을 내린 날이었다. 

 

약국이 구렁텅이로 떨어지던

디엠이 실적 왜그러냐고 난리를 치던

내 알바야? 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더더욱 그만두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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